병원에서 덜 흔들리는 기준

‘하, 있다 쉬어야지 조금만 더 버티자’가 위험한 이유

honeeybee 2026. 1. 18. 21:26

‘조금만 더 버티자’가 위험한 이유

 

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를 마주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말 중 하나는 “조금만 더 버티려고 했어요”다.

이 말은 책임감 있고 성실한 태도로 들리기도 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버티는 선택이 성숙함이나 의지의 증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내과·외과·중환자실에서 15년 동안 근무하며 반복해서 확인한 사실은 분명하다. ‘조금만 더’라는 판단은 대부분 회복을 미루는 선택이었고, 그 미뤄진 시간이 누적되면서 몸은 점점 더 극단적인 방식으로 멈춤을 요구했다. 이 글은 왜 ‘조금만 더 버티자’라는 생각이 가장 위험한 판단이 되는지, 그리고 그 판단이 어떤 과정을 거쳐 병원이라는 공간으로 이어지는지를 실제 임상 현장에서 반복 관찰된 흐름을 바탕으로 정리한 기록이다.

버틴다는 선택은 대개 미루는 판단이다

“조금만 더 버티자”라는 말에는 늘 이유가 붙는다. 오늘은 중요한 날이라서, 이번 주만 넘기면 되니까, 지금 쉬면 더 일이 밀리니까. 이 말은 무책임함이 아니라 책임감에서 나온 경우가 많다. 그래서 스스로를 설득하기도 쉽다.

하지만 의료 현장에서 이 말은 전혀 다른 의미로 들린다. 그것은 몸의 신호를 해석한 뒤 내린 판단이 아니라, 상황을 우선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몸은 이미 쉬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일정과 역할이 그 신호를 덮어버린다. 이 순간부터 회복은 뒤로 밀리고, 버티는 상태가 기본값이 된다.

간호사로 근무하며 수없이 확인한 사실은, ‘조금만 더’라는 판단은 거의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늘의 ‘조금만 더’는 내일의 ‘조금만 더’로 이어지고, 그 반복은 어느 순간 되돌릴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한다.



‘조금만 더 버티자’가 만들어내는 위험한 흐름

첫 번째로 나타나는 변화는 회복 기준의 완전한 붕괴다. 원래는 쉬어야 할 신호였던 피로와 통증이, 버텨야 할 조건으로 바뀐다. 몸이 보내는 신호의 의미가 달라진다. 임상에서 보면, 이 단계에 들어선 사람들은 “원래 이 정도는 참고 한다”고 말하기 시작한다.

 

두 번째는 회복 없는 소모의 반복이다. 쉬지 않은 상태에서 에너지를 계속 쓰면, 몸은 회복 대신 적응을 선택한다. 심박수는 높아진 상태로 유지되고, 수면은 얕아지며, 소화 기능은 떨어진다. 하지만 이 변화는 급격하지 않기 때문에 쉽게 무시된다. 병동에서 이런 환자들은 “크게 아픈 데는 없었다”고 말한다.

 

세 번째는 신호의 강도 변화다. 몸은 처음에는 약한 신호를 보낸다. 피로, 집중력 저하, 잔통증 같은 형태다. 그러나 이 신호들이 무시되면, 몸은 더 강한 방식으로 알려야 한다. 어지럼, 심한 통증, 숨참, 극심한 무기력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중환자실에서는 이 단계에 도달한 환자들을 자주 마주친다.

 

네 번째는 판단력의 저하다. 회복이 부족한 상태가 지속되면, 몸의 상태를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다. 지금이 위험한지, 더 버텨도 되는지를 스스로 구분하지 못한다. “이 정도는 괜찮다”는 판단이 반복되지만, 그 판단은 이미 왜곡된 기준 위에 서 있다.

 

다섯 번째는 병원에 오는 시점의 급격한 악화다. ‘조금만 더’가 반복된 끝에 병원을 찾았을 때, 상태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해져 있다. 병원에서는 자주 이런 말을 듣는다.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어요.” 그러나 기록을 따라가 보면, 이미 여러 번 멈출 기회가 있었다.

중환자실에서 가장 자주 떠올리는 장면은 바로 이 지점이다. 병을 완전히 막을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이 정도의 위중함은 피할 수 있었던 순간들이다. 그 순간마다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말이 있다. “조금만 더 버티려고 했어요.”



버티는 선택은 책임이 아니라 위험 관리 실패다

버틴다는 선택은 성실해 보이지만, 몸의 관점에서는 위험 관리에 실패한 판단인 경우가 많다. 몸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회복이 필요한지, 아닌지만 판단한다. 그 신호를 반복해서 무시하면, 몸은 결국 더 강한 방식으로 멈춤을 요구한다.

간호사로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사실은, 병원에 늦게 오는 사람일수록 “조금만 더”라는 말을 가장 많이 사용했다는 점이다. 반대로 병원을 덜 찾는 사람들은 버티지 않아서가 아니라, 버텨야 할 순간과 멈춰야 할 순간을 구분해 왔다.

내 몸을 병원에 덜 데려가는 습관은 더 강해지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조금만 더’라는 생각이 떠오를 때, 한 번 멈출 수 있는 기준을 세우는 데서 시작된다. 다음 글에서는 병원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 “그때 좀 쉬었어야 했어요”가 왜 반복되는지를 실제 현장 기준으로 이어서 이야기해 보려 한다.